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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락은 이제 사람은 못 먹어요. 소먹이라도 하려고 물 대는 기라.”
5일 오전 9시 경남 함양군 수동면 죽산리의 한 논. 해가 중천에 떠오르기 전인 데도 스마트폰 온도계엔 33℃란 숫자가 찍혔다. 논은 한눈에 봐도 상태가 썩 좋지 못했다. 벼 고사 피해가 논 중간까지 번져 있었다. 농민 박종갑씨(73)는 말라죽은 벼를 가리키며 “어제 간만에 소나기가 5㎜ 안팎 내려 논에 물은 조금 들어왔지만 벼는 그전에 죽었다”고 말했다.
박씨의 벼 재배면적은 모두 2만6446㎡(8000평). 이중 피해가 가장 심한 곳은 4463㎡(1350평) 규모 필지다. 그는 “벼가 타는 증상이 나타난 지 5일 정도 됐다”면서 “처음에는 논 끝자락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중간까지 번져 수확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당 논의 벼는 고사한 작물체가 뒤섞여 키가 들쭉날쭉했다.
박씨의 논에서 70m쯤 떨어진 하천에선 굴착기 엔진 소리가 쉼 없이 울렸다. 농가들이 바닥을 드러낸 하천을 파 물길을 만들고 양수기로 물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마을 이장인 박씨는 “물이 부족해 다른 농가들 논부터 물을 대다 보니 결국 내 논 피해가 커졌다”며 씁쓸해했다.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으로 경남권 벼농가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기상청이 5일 내놓은 ‘2026년 7월 기후특성’에 따르면 경남·부산·울산의 7월 강수량은 68.0㎜로 평년(304.7㎜)의 22.3% 수준에 그쳤다. 1973년 기상관측망 확충 이후 최저치다. 경남은 올 기상가뭄 발생일수(20.7일)도 전국 최고치를 찍었다.
농업용수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서 하동지역에선 간척지 논을 중심으로 염류장해가 발생한 것으로 본지 취재 결과 파악됐다. 하동군농업기술센터에 따르면 금성면 일대 간척지 논에서는 염류장해 발생면적은 7월31일 기준 109㏊에 달했다.
하동군농기센터 관계자는 “극심한 기상가뭄으로 토양 염분 농도가 높아진 데 따른 것”이라면서 “급수차와 살수차, 대형 양수기를 동원해 긴급 급수를 시행 중이지만 피해는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발 벼 생육 이상이 전국적인 벼 생산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8월은 벼가 출수를 앞두고 꽃대를 형성하는 시기로 수분이 많이 필요하다. 경남도농업기술원 관계자는 "이 시기에 물이 부족하면 생육과 등숙이 떨어져 쭉정이가 늘고 수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병해충 발생상황도 근심을 더하는 요소다. 농촌진흥청은 5일 내놓은 ‘농작물 병해충 발생정보 제10호(2026년 8월1~15일)’에서 식량작물분야에서 이삭도열병·벼멸구·흰등멸구에 대해 ‘주의보’를 발령했다.
박씨는 “벼농사 50년간 이렇게 물이 부족했던 적은 처음 같다”면서 “정부가 가뭄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함양=정채원 기자 chae1@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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